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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점수 인플레이션 심각, 고신용자도 대출 거절되는 이유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이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내 집 마련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신용점수가 950점에 달했지만, 대출 승인이 거절된 것입니다. “이 정도면 최상위 신용 아닌가요?”라고 물었지만, 은행 직원의 대답은 냉정했습니다. “요즘 이 점수로는 부족합니다.”

실제로 국민 2명 중 1명이 900점 이상의 신용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조차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점수는 올랐지만 변별력은 사라진 현행 신용평가 시스템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신용점수 900점 이상이 절반, 심각한 인플레이션 실태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신용점수 900점 이상을 받은 사람은 2,313만명으로 전체 신용평가 대상자의 47.0%에 달했습니다. 같은 시기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서도 전체의 44.3%인 2,216만명이 900점을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950점 이상의 초고신용자가 전체의 28.0%로 1,400만명에 육박한다는 점입니다. 통상 우량 신용자로 분류되는 800점 이상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비중은 69.0%로, 국민 3명 중 2명 이상이 우량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4년 신용점수 분포 현황

구분나이스평가정보코리아크레딧뷰로
900점 이상2,313만명 (47.0%)2,216만명 (44.3%)
950점 이상1,400만명 (28.0%)
800점 이상3,394만명 (69.0%)
전체 대상자4,921만명5,005만명
출처: 나이스평가정보, 코리아크레딧뷰로 (2024년 말 기준)

4년 전과 비교하면 이러한 신용점수 상향화 흐름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2020년 말 나이스평가정보 기준 900점 이상 획득 비중은 40.8%였지만, 4년 만에 6.2%포인트 증가했습니다. KCB의 고신용자 비중도 38.6%에서 44.3%로 5.7%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신용점수 변별력 상실로 대출 문턱 높아져

신용점수가 상향 평준화되면서 금융기관들은 신용점수만으로는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출 심사를 더욱 보수적으로 강화하고 있고, 고신용자조차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은행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9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평균 신용점수는 KCB 기준 939.4점으로 집계됐습니다. 분할상환식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이들의 평균 신용점수는 950.8점에 달했습니다. 이는 관련 공시 첫해인 2023년 같은 달보다 각각 14.6점, 26.0점이나 상승한 수치입니다.

5대 은행 대출 승인 평균 신용점수 변화

대출 유형2023년 9월2024년 9월상승폭
가계대출 평균924.8점939.4점+14.6점
주택담보대출 평균924.8점950.8점+26.0점
출처: 은행연합회(KCB 기준)

은행권 한 관계자는 “신용점수가 워낙 상향 평준화되다 보니 대출 심사의 일차적인 지표로도 의미가 많이 없어진 상황”이라며 “특히 정부의 규제로 대출 총량이 제한돼 있어 신용점수가 높아도 대출이 거절되는 사례가 꽤 있다”고 전했습니다.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이 중·저신용자에게 미치는 영향

신용점수 변별력 저하는 중·저신용자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점수 격차가 좁혀져 신용 상태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 위험도에 비해 대출 심사나 금리 산정 기준 적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용점수가 높은 이들까지 제2금융권으로 밀려나면서 중·저신용자가 설 자리를 잃는 현상입니다. 사회 초년생이나 은퇴자처럼 금융거래가 많지 않은 씬파일러(thin-filers)의 경우 신용도 파악이 제한적이기에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고, 변별력이 낮은 신용평가모델에서는 더욱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출 시장은 기본적으로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면서 “변별력이 약해진 신용점수 체계가 유지되면 상환 의지가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동일한 등급으로 묶여 같은 금리를 적용받는 시장 왜곡이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신용등급별 주요 불이익 현황

신용등급주요 문제점
고신용자 (900점 이상)높은 점수에도 대출 거절 사례 증가, 변별력 부족으로 우대 혜택 감소, 제2금융권으로 이동
중·저신용자 (800점 미만)실제 신용도 대비 과도한 불이익, 금융서비스 접근성 악화, 고신용자 유입으로 자리 상실
씬파일러금융이력 부족으로 낮은 평가, 신용 개선 기회 제한, 금융 소외 심화

금융계급제의 역설, 고신용자·저신용자 모두 피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금융계급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현행 금리 산정 체계를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금융계급제”라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합니다. 단순히 저신용자가 높은 금리를 받는 구조가 아니라, 신용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 금융 소외와 불평등 문제가 뒤엉켜 있습니다. 높은 신용점수를 받더라도 은행으로부터 대출 승인을 거절당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동시에, 전반적인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신용점수가 낮은 이들의 금융서비스 접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모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용점수가 높은 고객이 대출 승인을 거절당하는 빈도가 높아지면 신용점수에 대한 금융소비자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며 “이는 자칫 금융시스템의 작동 방식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신용점수 신뢰도를 높일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용점수 개선을 위한 해결책

현재의 신용평가 시스템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변별력 있는 신용평가모델 개발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먼저,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주의 상환 능력을 더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신용평가모델이 필요합니다. 현행 시스템은 채무 상환 등 재무 정보에만 치중해 있어 금융 이력이 부족한 이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통신비, 공과금, 구독 서비스 납부 이력 등 다양한 대안 신용정보를 활용한다면 씬파일러들도 공정한 신용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소득, 자산, 직업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다차원 평가 시스템 도입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신용평가사들의 평가 기준을 재검토하고, 금리 산정 기준의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성실하게 빚을 상환해 온 차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대출 시장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용평가 시스템 개선 방향

개선 영역주요 내용
평가 데이터 다양화통신비, 공과금, 구독 서비스 납부 이력 등 대안 신용정보 활용
다차원 평가 도입소득, 자산, 직업 안정성 등 종합적 고려
평가 기준 투명화금리 산정 기준 명확화 및 공개
씬파일러 지원금융이력 부족자를 위한 별도 평가 체계 마련

마치며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닙니다. 고신용자는 높은 점수에도 대출을 받지 못하고, 중·저신용자는 더욱 소외되는 ‘금융계급제의 역설’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변별력을 잃은 신용평가 시스템은 결국 모두에게 불이익을 주는 구조입니다.

이제는 점수의 높낮이가 아니라, 실제 상환 능력과 의지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금융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정한 금융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금융 개혁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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