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복지단 군마트는 진정 군인 가족을 위한 마트인가?
평일 오후 2시, 고양시의 한 국군복지단 군마트 앞. 주차를 기다리는 20여 대의 차량이 줄을 서 있고, 마트 안은 수북하게 물건을 담은 카트를 끄는 고객들로 북적인다. 계산대 앞에는 20여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요즘 가장 핫한 쇼핑 명소가 된 ‘군마트’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성황 뒤에는 씁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군마트와 200~300m 떨어진 동네 슈퍼 두 곳은 이미 문을 닫았다. 16년간 장사를 해온 한 슈퍼마켓 사장은 “소주를 한 병도 못 팔 때가 있다”며 한숨을 내쉰다. 과연 군인 복지와 동네 상권 보호, 이 두 가지를 모두 살릴 수 있는 해법은 없는 걸까?
목차
국군복지단 군마트, 군인 가족을 위한 복지의 산실
국군복지단 군마트는 단순한 할인마트가 아니다. 군인복지기본법과 군 복지시설 및 복지기금 관리·운용 훈령에 근거해 설립된, 우리나라 국방력의 근간인 장병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복지시설이다.
현역장병, 사관생도, 사관후보생, 부사관후보생, 군무원, 국방부공무원, 10년 이상 복무하고 전역한 군인, 국군공무직근로자, 국가유공자, 국가보훈대상자, 그리고 이들의 가족까지 이용할 수 있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특히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군마트의 본래 취지다. 군 복무의 특수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수준을 고려할 때, 이런 복지제도는 분명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전국 120개소 시대, 급속히 확산되는 군마트
현재 전국에 120여 곳의 군마트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 중 48%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2025년에는 고양 일산에 첫 번째 ‘거점 단위의 대형 군마트’가 오픈하는 등 규모와 수도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군마트 이용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해당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면 되는데, 최근에는 국방모바일 사진등록 시스템을 통한 모바일 인증도 가능하다. 1인당 1일 구매한도는 100만원이며, 가족이 함께 방문하면 가족 수만큼 구매할 수 있다.
이용 대상자들에게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일반 마트 대비 평균 10-40%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저렴한 가격이 만들어낸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충격적인 가격 경쟁력, 그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

군마트의 가격 경쟁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모 회사 캔맥주 355㎖ 캔 24개입 한 박스는 군마트가 2만7120원, 인근 마트가 4만4400원으로 63.7% 쌌다. 소주는 개당 가격이 970~1090원으로 약 35%정도의 차이가 났다. 조니워커 18년 750㎖ 위스키는 10만9980원으로 인터넷 쇼핑몰보다 20~70%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저렴한 가격 뒤에는 아픈 현실이 숨어있다. “소주를 병당 1230원에 들여와 1450원에 판매하는데 군마트에선 1090원에 판다”는 한 마트 점장의 하소연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군마트의 판매가가 일반 마트의 납품가보다도 싼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20년 넘게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한 사장님의 절규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격 차이가 너무 크니 대적할 생각도 못하고 있다. 주변 마트는 다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 버는 건 없지만, 1년만 더 기다려보자는 심정”이라는 말에서 동네 상인들의 절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허술한 관리로 확산되는 부작용들
더 심각한 것은 관리 체계의 허점이다. 원칙적으로는 엄격한 신분 확인을 통해 자격자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확인할 뿐 출구를 통해 입장하더라도 별다른 제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계산할 때도 신분증 확인을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관리 소홀로 인해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군마트에서 출고가보다 싸게 산 제품들이 영등포나 청량리 시장으로 흘러가고, 중고거래 플랫폼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유통된다는 것이다. 속칭 ‘삥쟁이’라고 불리는 중도매상들이 활개를 치면서 정상적인 유통질서까지 교란시키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세금계산서 발행도 없는 ‘무자료 탈세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소상공인들의 절박한 외침과 대응 움직임
이런 상황에서 소상공인들과 관련 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한국수퍼체인유통사업협동조합은 국군복지단에 공문을 보내 신분증 확인 조사 강화, 구매한도 개선, 출고가 조정 등을 요청했다.
김재면 한국수퍼체인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의 말이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군인 복지도 좋지만 소상공인의 생계가 달린 슈퍼, 마트를 문 닫게 할 정도로 저렴하게 납품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도 6월 국군복지단과 군마트 납품제품의 불법 재판매를 차단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온라인 플랫폼 내 불법 재판매 정황을 제보받아 삭제·판매 차단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상생을 위한 현실적 개선방안들
그렇다면 군인 복지와 소상공인 보호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러 현실적인 개선방안들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철저한 이용자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의 느슨한 신분 확인 시스템을 개선해서 자격이 없는 사람의 이용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입구와 출구 모두에서 신분 확인을 실시하고, 계산 시에도 반드시 신분증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합리적인 가격 정책 재검토가 절실하다. 지나치게 낮은 출고가로 인해 정상적인 유통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군인 복지라는 본래 취지는 살리되, 일반 유통업체들이 최소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별 상권 영향 평가제도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새로운 군마트를 개설하기 전에 해당 지역 상권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과도한 타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입점을 재검토하거나 운영 방식을 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넷째, 불법 재판매 차단을 위한 실질적 조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구매 영수증에 개인정보를 연동하거나, AI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서 불법 재판매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균형점을 찾는 지혜로운 선택
군마트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결국 ‘균형’의 문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과 그 가족들의 복지는 분명히 중요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그 복지가 다른 누군가의 생계를 위협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코로나19와 경기침체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군마트의 급속한 확산은 또 다른 생존의 위기가 되고 있다. 16년, 2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묵묵히 지역 주민들을 위해 봉사해온 동네 상인들의 절규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해답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 전략’에서 찾아야 한다. 군인 복지는 유지하되, 동네 상권과도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군복지단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군인 복지라는 선한 목적이 다른 선한 가치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복지정책의 완성이 아닐까?
앞으로 군마트가 군인 가족들에게는 든든한 복지의 터전이 되고, 동네 상인들에게는 공존할 수 있는 이웃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성숙하고 따뜻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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